About
길이 있기에 삶은 이어진다.
길은 마을과 마을, 거리와 거리를 이어주고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연결한다. 삶이란 한곳에 머물다가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자신만의 발자취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마음이 닿는 대로 이곳저곳을 여행하던 나는, 길을 걷다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삶의 특정한 순간들을 포착한다.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현장에서 건진 삶의 조각들. 마주하자마자 이내 흩어지는 순간들을 회화라는 형식으로 직조해 보려 한다. 그림들을 통해 사소한 사물도 서로 얽혀있음을, 우리 모두 세계 전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고 싶다.
결국 나에게 그림이란,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삶을 탐구하는 과정. 지도를 만드는 것(Cartography)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들과 나란히 걷는 것을 상상한다. 그 길이 이끄는 곳은 단순한 지리적, 물리적인 장소를 넘어선다. 그곳은 역사와 기억의 지층이 켜켜이 쌓이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생성할 존재들의 공간이다.
우리들 사이에도 어떤 길 하나가 열려, 또 하나의 지도가 만들어질 수 있길 바라본다.